"고기에는 원래 똥이 들어가기 마련이죠. 익혀 먹으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이게 웬 '명박스러운' 혹은 '운천스러운' 발언인가?
영화 <패스트푸드 네이션>에서 자신이 다니는 패스트푸드체인 '마커스'의 주력 상품인 '빅원' 햄버거 고기에 똥이 들어있다는 정보를 들은 영업부 이사 돈 앤더슨(그렉 키니어)은 진상 조사를 위해 공장이 있는 콜로라도로 간다.
그 곳에서 만난 쇠고기 딜러 해리(브루스 윌리스)가 게걸스럽게 햄버거와 맥주를 먹으며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하는 말이 바로 "고기에는 똥이 들어가기 마련, 익혀 먹으면 문제없다"다.
먹는 이의 불안감은 생각하지 않은 채 쇠고기 도축업자들의 주장만을 말하는 해리가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목을 맨 정부 관계자와 너무 똑같아 섬뜩하기까지 하다.
"똥버거, 익혀먹으면 아무 문제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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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기는 익혀 먹으면 된다"라고 말하며 미국 쇠고기 업주들을 대변하는 해리(브루스 윌리스) |
ⓒ 판씨네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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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제작되어 이번에 드디어 한국에 공개되는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의 감독)의 <패스트푸드 네이션>은 제목 그대로 '패스트푸드 제국'이 된 미국을 사실감있게 그린 극영화다.
맥도날드와 버거킹의 아성을 무너뜨리며 승승장구하는 패스트푸드 체인 '마커스'. 그 발전 뒤에는 뿌리깊이 박힌 미국의 병폐들이 숨어 있었다. 영화는 바로 그 미국병을 바라보는 미국인들의 낮은, 그러나 힘있는 자성의 목소리다.
돈은 소를 도축하는 공장을 찾아가지만 깨끗한 기계설비와 위생 마스크를 쓴 노동자들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직접 체인점에 찾아가 빅원을 먹어보지만 그렇게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과거 목장을 경영했지만 기업화에 밀려 지금은 황폐한 땅밖에 남아있지 않은 루디(크리스 크리스토퍼슨), 쇠고기에 오염 물질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문제될 것 없다"고 말하는 쇠고기 딜러 해리를 만나면서 돈은 혼란스럽다.
사실대로 밝혀야하지만 돈은 그럴 수 없다. 그랬다가는 바로 직장에서 쫓겨나야 하니까. 돈은 결국 회사 시스템에 순응하는 삶을 택하고 아무런 가책없이 회사로 돌아와 중역회의를 한다.
이주노동자의 피눈물이 담긴 고기
쇠고기 도축 공장에는 멕시코에서 불법으로 이민을 온 이주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멕시코에서 한 달 동안 일해야 받을 수 있는 돈을 하루 일하고 받을 수 있다고는 하지만, 소의 목을 자르고 내장을 꺼내는 일을 직접 해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게다가 기계에 팔다리가 잘려도 보상을 받지 못하고 그 길로 공장을 나가야 한다.
공장주들은 본사에서 조사하러 나오면 깨끗하게 관리하는 척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아니, 오히려 내부 공개를 하지 않으려 한다. 햄버거 고기 속에는 이주노동자들의 피와 눈물이 담겨있고 미처 정제하지 못한 배설물까지 담겨 있다.
실비아(카탈리나 산디노 모레노)는 남편 라울(윌머 바더라마), 여동생과 함께 이민을 오고 함께 도축 공장에서 일하게 되지만 곧 공장을 나와 호텔 청소부로 일한다. 그러나 남편 라울이 사고로 부상을 당하고 보상을 받지 못하자 자진해서 다시 공장으로 들어온다. 공장장에게 몸까지 바치며 공장으로 돌아오는 실비아. 그의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목이 잘리고 내장이 꺼내진 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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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멕시코 이주노동자들의 고달픈 삶은 이 영화의 또 하나 중요한 요소다. |
ⓒ 판씨네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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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감나는 도축 장면을 위해 감독은 공장에서 직접 촬영을 하려고 했지만 미국 공장들은 이를 거절했고 결국 멕시코까지 가서야 촬영을 했다고 한다. 햄버거 고기를 만드는 동안 이주 노동자들은 엄청난 착취에 시달린다. 위생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
본사에서 조사하러 나오면 공장들은 깨끗한 척, 아무런 문제가 없는 척 하지만 실제로는 검역에 무신경하다. 공장 내부도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지금 쇠고기 검역 주권은 미국에 있다. 검역을 강화한다고 말해도 국민이 믿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0대 소녀는 왜 아르바이트를 그만뒀나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앰버(애슐리 존슨)는 마커스의 한 체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앰버가 사는 마을은 마커스 체인점이 들어서면서 경기가 살아났고 앰버는 체인점에서 일하며 자동차 보험료를 낸다.
성실하게 일하던 앰버에게 변화가 일어난다. 앰버의 외삼촌 피트(에단 호크)는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면서 "열정적으로 산 사람들은 비록 성공하지 못해도 자기의 삶을 후회하지 않는다"라고 앰버에게 말한다. 그리고 앨리스(에이브릴 라빈)를 위시한 환경운동가 그룹을 만나면서 앰버는 마침내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게 되고 깊은 밤에 몰래 목장의 소들을 풀어주는 구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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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커스 체인점에서 일하는 앰버(애슐리 존슨)는 햄버거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된 후 아르바이트를 그만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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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커스에 납품되는 소들의 목장은 환경운동가 그룹의 표현을 빌면 "소들의 배설물이 덴버시 인구 전체보다 더 많고, 그 배설물을 정화처리 없이 그대로 버리며, 10만 마리의 소들이 자기의 배설물이 섞인 유전자 변형 사료를 먹으며 길러지는 곳"이다. 이런 곳에서 청춘을 보낸다는 것은 앰버에게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던 것.
마커스 체인점은 또 어떤가? 보안을 유지한다는 감시카메라는 사실 아르바이트생을 향하고 있다. 그렇게 성실하다고 앰버를 추켜세우던 점장은 막상 그만둔다는 말에 쌀쌀맞게 "아무 일도 안 하는 현실을 맞이해 봐라"라고 말한다.
'빅원' 하나에 미국의 병폐가 들어있다
마커스의 주력 상품 '빅원'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보자. 배설물 섞인 유전자 변형 사료를 먹인 소는 공장에서 멕시코 이주 노동자들의 손으로 도축된다. 검역을 제대로 하지 않은 고기들이 패티로 만들어져 체인점으로 보내지면 아르바이트를 하는 10대들의 손을 통해 햄버거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런 의심없이 미국인의 입에 들어가며 그로 인해 회사는 막대한 이익을 챙긴다. 회사는 말한다.
"손님을 죽이지 마라. 손님이 없으면 팔아먹을 대상이 없다."
햄버거 하나에 미국자본의 병폐가 숨어있는 셈이다. 갑자기 햄버거 먹기가 정말 꺼려진다.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미국은 철저하게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다. 자본이 우선인 사회에서 국민의 삶과 안전은 2순위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대량 생산라인에서 불순물을 완전히 걸러내기란 불가능하다는 것, 그렇지만 고기를 익혀 먹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자본 지상'의 논리가 미국에서 통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쇠고기 수입 문제도 따지고 보면 '경제 지상' 논리를 앞세운 것 아닌가? 조·중·동은 쇠고기 개방을 안 하면 FTA도 없고 이는 국민 경제에 치명상을 입힐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 또한 미국과의 마찰을 이유로 재협상을 전혀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 미국 자본가의 논리를 지금 정부는 국민에게 강요하고 있다.
혹시 감독과 배우들 연행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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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앨리스(에이브릴 라빈)를 비롯한 환경운동가 그룹은 앰버의 제안대로 목장의 소들을 모두 풀어주기로 하고 행동에 들어가지만…. |
ⓒ 판씨네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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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가의 논리를 미국 영화인들은 이미 2년 전에 <패스트푸드 네이션>을 통해 비판했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채식주의자다. 그를 채식주의로 이끈 이는 바로 영화 속에서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콤비 에단 호크다.
브루스 윌리스는 자진 출연을 결심한 뒤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으며 에이브릴 라빈은 망설임 없이 극영화 데뷔작으로 이 영화를 택했다. 배우들에겐 영화에 출연한다는 것 자체가 '자기 목소리 내기'였으며 이로 인해 미국 쇠고기 도축을 비판하는 '낮은 목소리'는 힘을 얻게 된 것이다.
미국 영화인들의 경고를 이명박 정부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혹 이 영화인들을 괴담의 배후조종자로 몰아붙이는 것이 아닐까? 영화를 미국 내 좌파 문화인들의 선동으로 낙인찍을까? 아니면 '허위사실 유포죄'로 인터폴에 연락해 감독과 배우들을 전원 연행하라고 하지 않을까? 감독 집에 한국 사복 경찰들이 잠복하는 것은 아닐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그만큼 지금 별의별 짓을 다하며 미국 자본가 말만 따르는 게 이 정부니까. |